출처: 포브스코리아 2004년 02월 15일 13호 글 : Monte Burke 기자
ESPN의 ‘X게임’이 아찔한 묘기와 저렴한 비용, 중계권 독점으로 짭짤한 돈벌이가 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쥐꼬리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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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4일 250명의 젊은이가 새로 단장한 콜로라도주의 애스펀 마운틴 리조트로 몰려들었다. 유선 스포츠 채널 ESPN이 연간 두 번 개최하는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가운데 하나인 겨울 X게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헐렁한 옷차림, 형형색색의 염색머리, 여러 군데 피어싱을 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스노보드 ·스키 ·오토바이 ·스노모빌을 이용해 살이 에는 듯한 차가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미 전역의 시청자 수백만 명은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지난 10년 사이 X게임은 해마다 인기를 더해 가며 매우 값진 TV 스포츠 사업으로 성장했다. 붙잡기 힘든 12~19세 청소년층으로 파고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소니 ·질레트 같은 기업들에는 좋은 마케팅 기회다. 오늘날 TV 중계권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방자한 프로 선수들은 높은 개런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X게임은 예외다.
지난 4년 사이 겨울 ·여름 X게임 시청자 수는 각각 88% ·50% 증가했다. 지난해 여름 X게임은 5,000만 명, 겨울 X게임은 3,7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X게임 덕에 ESPN2가 출범할 수 있었다. ESPN2의 현재 가치는 10억 달러에 이른다. 라이선스 협상 20건도 성사됐다. 라이선스에는 아이맥스(IMAX) 영화 1건, X게임 스케이트 공원 5곳, X게임 DVD, 장난감, 심지어 아이스크림도 포함된다.
지난 1월 24일 첫 생중계에 들어간 X게임의 경우 여름 ·겨울 경기 모두 합해 매출 7,000만 달러, 순익 1,5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ESPN은 총수익이 1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실적이 이렇게 짭짤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SPN은 X게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TV 중계권료로 들어가는 돈은 한 푼도 없다. X게임이 큰 돈벌이가 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젊고 열정적이며 팬들에게 즐거움까지 안겨주는 선수들의 몸 값은 그야말로 ‘껌 값’이다. 이번 겨울 X게임에 참가한 선수 250명에게 지급된 총상금은 57만6,000달러다. 프로 미식축구에서 후보 쿼터백 한 명 몸 값에 불과하다.
일부 선수와 에이전트가 짜증을 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은 ESPN 배만 불리는 현 체제를 엎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케이트보드 부문 5위권 안에 드는 크리스 젠트리(29)는 현 체제를 “얼토당토않다”며 “X게임 인기가 올라가는 만큼 선수들 몸 값도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젠트리는 X게임에 8차례 참가했지만 연간 상금 수입은 겨우 2만5,000달러다.
세계대회에서 10번이나 우승한 스노보드 선수 베렛 크리스티.
그는 지난해 선수조합 결성 문제로 연예전문 변호사 에드워드 샤피로와 접촉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프로 라이더스 조합(Pro Riders Organization)’이 탄생했다. 가입 선수는 50명이다. 샤피로는 선수들이 “진정한 프로로 대접받고 싶어한다”며 “그러려면 서로 뭉쳐 더 나은 경제적 보상을 쟁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그리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ESPN의 프로그램 편성 책임자 로널드 세미아오(Ronald Semiao)는 “우리가 팔짱 끼고 가만히 앉아 있겠는가”라며 “선수들만 손해”라고 잘라 말했다. X게임이 없었다면 선수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리라는 게 ESPN의 주장이다. 스타급 선수들은 광고계약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젠트리는 상금이 적다고 불평하지만 광고계약으로 연간 8만 달러 정도를 벌어들인다. 스케이트보더 토니 호크도 X게임에서 명성을 날리면서 연간 1,000만 달러나 거머쥐고 있다.
ESPN의 조지 보덴하이머(George Bodenheimer) 사장은 “누가 경기에 참가하라고 떼밀기라도 했느냐”며 반문했다.
일부 선수들의 생각도 같다.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배렛 크리스티(32)는 세계대회에서 10번이나 우승한 스노보드 선수다. 그러나 크리스티가 지난 9년 동안 X게임에서 올린 수입은 9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 동안 어깨뼈 탈골, 편타성(鞭打性) 손상, 꼬리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ESPN으로부터 어떤 보험혜택도 받지 못했다. 지금 크리스티는 광고 수입으로 연간 10만 달러를 벌고 있다. 그녀는 “충분한 보상이 못 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ESPN 덕”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계대회에서 10번이나 우승한 스노보드 선수 베렛 크리스티.
ESPN이 선수조합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케이트보드뿐 아니라 다른 종목 조직도 결성되고 있다. 스포츠 마케팅 서비스업체인 와서먼 미디어 그룹의 케이시 와서먼(Casey Wasserman) 회장은 이른바 ‘액션 스포츠(요즘 남용되는 ‘익스트림’ 대신 ‘액션’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추세다)’ 스타들과 조용히 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TV 중계권료를 요구할 수 있는 공인 기구 설립에 나서기 위해서다. 선수들을 많이 확보해 ESPN과 협상하겠다는 계산이다. NBC는 ESPN의 X게임과 똑같은 경기를 올 하반기 출범시킬 계획이다.
X게임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가운데 시작됐지만 요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93년 ESPN은 제2의 메이저 스포츠 채널을 출범시키는 데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당시 중견 프로듀서였던 세미아오는 스케이트보딩 등 액션 스포츠가 TV 광고에 계속 등장하는 것을 간파했다. 잡지 코너를 둘러본 그는 액션 스포츠 전문지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올림픽 같은 스포츠 축제를 만들자고 임원들에게 제안했다. 세미아오의 제안은 먹혀들지 않았다. ESPN 임원진 가운데 누더기 같은 옷차림의 젊은이들을 운동선수로 인정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95년 익스트림 게임스(Extreme Games)로 처음 명명된 대회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와 뉴포트에서 열렸다. 당시 인기를 끈 종목이 카이트 서핑과 번지 점프였다. 2년 뒤에는 겨울 대회가 생겼다. 광고주들은 흔쾌히 스폰서로 나섰다.
펩시콜라가 소유하고 있는 마운틴 듀는 X게임 첫해부터 스폰서로 나섰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시장은 줄잡아 3,300만 명에 구매력이 1,750억 달러나 된다. 자전거 제조업체 허피(Huffy Corp.)는 2000년 X게임용 BMX 자전거와 스쿠터를 출시했다. BMX 제품군은 이후 70만 대가 팔려나가면서 매출 5,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 가운데 8%는 ESPN 몫으로 돌아갔다.
스포츠 매니지먼트업체 IMS 스포츠 소속 에이전트 서시 월리스 헤첼은 “선수들의 경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ESPN은 조직을 싫어하고 제멋대로인 선수들이 한데 뭉치기가 매우 힘들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월리스 헤첼은 “스케이트 선수와 스노보더들을 한데 모아놓고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보상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합의하게 될 경우 X게임의 자유질주는 불가능해질 것이다.